북한 대표 '스포츠 외교관' 장웅 전 IOC 위원 별세… 스포츠와 태권도로 남북 가교

  

남북 스포츠 교류의 상징, WT-ITF 합동시범·평창 단일팀까지 '태권도 외교' 한 축 담당

 

2012년 런던 올림픽기간 고 장웅 총재가 <무카스>를 IOC위원 본부숙소로 초청해 단독 인터뷰를 하고 있다.

태권도를 통해 남과 북을 잇고, 국제 스포츠 외교의 현장에서 활동해 온 장웅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별세했다. 향년 87세.

 

장웅은 북한 체육계의 핵심 인물이자 국제태권도연맹(ITF) 전 총재로, 분단의 장벽 속에서도 스포츠와 태권도를 매개로 남북 교류의 길을 만들어온 인물이다.

 

IOC 위원으로서 장웅은 북한 체육의 국제무대 진출을 이끌며 영향력을 발휘했다. 단순한 체육 행정가를 넘어 국제 스포츠 외교관으로서 역할을 수행했다는 평가다. 그는 북한 체육 대표단의 국제대회 참가를 조율하고, 제재 국면에서도 북한 선수들이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도록 IOC 내부에서 중재자 역할을 했다.

 

고 김운용 총재와 함께 만들어낸 상징적 장면이 대표적이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개회식 남북 동시 입장은 스포츠 외교의 결정적 장면이었다. 정치보다 먼저 손을 내민 스포츠의 힘, 그 중심에 장웅이 있었다.

2000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에 당시 한국을 대표하는 김운용 IOC위원과 북한을 대표하는 장웅 위원이 합심해 '한반도' 깃발로 남북공동입장을 했다.

1994년 IOC 총회에서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될 당시만 하더라도 국제태권도연맹(ITF)는 이를 적극 반대했다. 당시 장웅은 아직 ITF 총재가 아니었다. 그러나 ITF 창시자인 고 최홍희 총재가 2002년 서거 이후 북한을 중심으로 재편된 ITF 총재로 그해 취임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장웅이 ITF를 이끌며 국제 태권도계에 등장한 이후 WT-ITF 간 갈등은 이전과 완전히 다른 양상을 띠었다. 분열된 태권도 구조 속에서도 그는 '통합'과 '교류'를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6년 싱가포르 IOC 총회다. 태권도가 비공식적으로 2표 차로 가까스로 올림픽 잔류가 결정됐을 때, 장웅 총재는 태권도 잔류에 힘을 실었다. ITF 총재임에도 불구하고 WT 태권도의 올림픽 유지를 지지한 것이다.

 

이후에도 태권도가 박진감 부족과 미디어 노출 부재, 심판 판정 시비 등으로 번번이 퇴출 위기에 몰렸을 때마다 장웅은 ITF 총재 겸 IOC위원으로서 WT-ITF를 떠나 '태권도'의 올림픽 유지를 위해 든든히 지지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기간 <무카스>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장웅은 올림픽에 태권도가 잔류하는 데 지지하느냐는 질문에 "ITF도 WT와 같은 태권도다.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에서 퇴출되면 다시는 못 돌아온다"고 답했다.

 

이어 "그래서 지난해(2011년)부터 IOC 내부에서 태권도가 잔류할 수 있도록 로비를 하고 있다. 같은 위원들이지만 속내를 알 수 없어 어렵다. 모두가 같은 뜻을 갖고 있으니 좋은 결과를 기다려보자"고 말했다.

2015년 스위스 로잔 IOC본부에서 토마스 바흐 위원장과 WT 조정원 총재,
ITF 장웅 당시 총재가 상호 협력데 대한 의지를 재확인 했다. 

세계태권도연맹(WT) 조정원 총재와의 인연도 각별하다. 2007년 ITF 총재로서는 최초로 장웅 위원이 ITF 총재 자격으로 WT서울 본부에 임원들과 방문했다. 이후 계속 스킨십을 이어가다 2014년 난징 청소년올림픽에서 당시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조정원 총재와 함께 협력 의정서에 서명했다. 이는 WT와 ITF가 공식적으로 협력 관계를 천명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바흐 위원장의 중재로 양 기구는 본격적인 협력에 나섰다. 2005년 IOC의 권고로 WT와 ITF 양 기구가 통합을 위해 기술통합을 전제로 2009년까지 11번의 회담을 가졌다. 결과적으로 결실은 맺지 못했지만 적대적 관계는 아니었다. 그 변화의 중심에 장웅 위원이 있어 가능했다. 

 

그 상징적인 결과가 2015년 러시아 첼랴빈스크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였다. 회장을 리용선 회장에게 물려줬지만, ITF 시범단이 WT 세계대회 무대에 처음으로 등장하며 합동시범의 물꼬를 텄다. 이는 1966년 최홍희 총재가 ITF를 창설한 이후 약 50년 만에 이뤄진 역사적 화합이었다.

2017 무주 WT 세계태권도선수권에 북한 평양에서 ITF시범단과 함께 방한해 개막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과 인사를 하고 있다. 

이어 2017년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는 총재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직접 방한해 역사적인 WT-ITF 합동 시범을 함께했다. 당시 경색된 남북 관계 속에서도 성사된 이 장면은 태권도 통합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으로 평가된다.

 

특히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남북 단일팀 구성과 교류 확대 과정에서 핵심적인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당시 남북 관계는 북한의 잇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장웅은 평창 올림픽 직전 북한의 참가 의사를 IOC에 전달하며 남북 화해의 물꼬를 텄다.

 

경색된 남북 관계 속에서도 태권도는 가장 먼저 움직였고, 평창 개막식 식전 행사에서 WT와 ITF 합동시범단이 함께 무대에 오른 장면은 전 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정치와 군사적 긴장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도 스포츠 외교관으로서 역할을 멈추지 않았다.

2019년에는 스위스 로잔 올림픽박물관에서 WT와 ITF 시범단이 태권도 올림픽 채택 25주년을 기념한 특별 합동시범을 선보였다. 이는 장웅이 생전에 추진해온 WT-ITF 교류의 상징적인 결실이었다.

 

그는 WT 시범단을 평양으로 두 차례 초청해 공연을 성사시키며 남북 체육 교류의 폭을 넓히는 데에도 기여했다.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스포츠 교류를 이어가려는 그의 행보는 꾸준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북한의 국제 스포츠 교류는 사실상 단절됐다. 코로나19 이후 북한이 국경을 폐쇄하며 국제대회 참가를 중단했고, 이는 장웅의 스포츠 외교 활동에도 제약이 됐다. 북한은 2020년 도쿄 올림픽과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도 불참했으며, IOC로부터 자격 정지 조치를 받기도 했다.

 

장웅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북한 체육의 국제 복귀를 위해 노력했으나, 건강 악화와 북한 내부 사정으로 활동이 제한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2017년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극적으로 방문한 장웅 위원과 리용선 총재 이들을 환영하며 조정원 총재가 만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세계태권도연맹(총재 조정원, WT)은 1일 공식 추모 성명을 통해 "WT는 장웅 IOC 명예위원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ITF 전 총재로서 그는 전 세계 태권도 공동체 내 통합을 촉진하는 데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WT는 "특히 조정원 WT 총재와 함께 2014년 난징 청소년올림픽에서 당시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협력 의정서에 서명했다"며 "2017년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는 ITF 시범단과 함께 참석해 협력의 중요한 순간을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WT는 "그의 가족과 전체 태권도 공동체에 진심 어린 애도를 전한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전했다.

 

태권도계 관계자는 "장웅 위원의 별세로 남북 스포츠 교류를 이끌어온 마지막 연결고리가 끊긴 셈"이라며 "향후 남북 관계 개선 시 그가 만들어놓은 태권도 교류의 토대가 다시 빛을 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편집자 주] 

 
[무카스미디어 = 한혜진 기자 ㅣ haeny@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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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진
태권도 경기인 출신의 태권도·무예 전문기자. 이집트 KOICA 국제협력요원으로 태권도 보급에 앞장 섰으며, 20여 년간 65개국 300개 도시 이상을 누비며 현장 중심의 심층 취재를 이어왔다. 다큐멘터리 기획·제작, 대회 중계방송 캐스터, 팟캐스트 진행 등 태권도 콘텐츠를 다각화해 온 전문가로, 현재 무카스미디어 운영과 콘텐츠 제작 및 홍보 마케팅을 하는 (주)무카스플레이온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국기원 선출직 이사(언론분야)와 대학 겸임교수로도 활동하며 태권도 산업과 문화 발전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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